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엔촐레른 가문 (문단 편집) == 분가: 슈바벤계(호엔촐레른 공가) == [[파일:호엔촐레른 가문 기본 문장.svg|height=400]] 호엔촐레른 공국들의 군주 및 루마니아 왕국의 국왕을 배출한 가계. [[가톨릭]]이다. 슈바벤계가 통치하는 독일 남서부의 공국들은 그저그런 작은 영방(領邦) 국가들로 존재하였다. 1576년에 호엔촐레른 백작령은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과 호엔촐레른헤힝겐 백작령으로 분할되었고, 1623년에 이들 백작령은 공국(Fürstentum)으로 승격되었다. 그러다가 1850년에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과 호엔촐레른헤힝겐 두 공국은 프로이센 왕국에 흡수되었다. 여기에 약간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자면, [[프랑스 2월 혁명]] 이후 [[1848년]]에 [[1848년 혁명|유럽 전역을 시민혁명이 휩쓸면서]] [[민족주의]]가 고조되었다. 호엔촐레른 공화국이 선포되고 자신들의 지위가 매우 위험해지자, 1849년에 호엔촐레른헤칭겐 공국의 마지막 군주 콘스탄틴[* 첫 부인과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고,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남자 후손은 있었으나 [[귀천상혼]]인 까닭에 그가 1869년에 죽자 가계는 절손된다. 그래서 호엔촐레른 가문 수장 타이틀은 먼 친척이자 옆동네(...)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국의 공작이었던 카를 안톤이 가져갔다.]과 즉위한 지 1년 정도 되었던 카를 안톤은 스스로 작위를 포기하고 영토를 먼 친척인 프로이센 왕 [[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]]에게 넘겼다. 그리고 1862년까지 프로이센 의회의 수상으로 있다가, 말년에는 그 자리에서도 물러나서 호엔촐레른 가문의 가톨릭 군주로써 의무를 수행하였다. 호엔촐레른헤힝겐 공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콘스탄틴이 가계가 절손된 이후 '''슈바벤계는 전부 이 사람의 후손'''. 카를 안톤의 큰아들인 레오폴트[* 루마니아 국왕 타이틀은 동생 [[카롤 1세]]가 가져갔지만, 자녀가 없어서 동생 사후 루마니아 왕가 타이틀은 이 사람의 둘째아들인 [[페르디난드 1세]]가 가져가게 된다.]는 [[프로이센-프랑스 전쟁]]의 원인이 되는 스페인 왕위 계승의 논란인물이었고, 둘째 아들 카를은 밑에서 언급되다시피 루마니아 왕으로 즉위했다. 아이러니하게도 공국도 없어지고 프로이센(프랑켄계 호엔촐레른가)에게 합병당했으면서도, 마구 귀천상혼을 한 프랑켄계 호엔촐레른 친척들에 비해 슈바벤계 가주 일족은 의외로 귀천상혼이 적은 편이다. 하지만 세대가 점점 내려오면서 현 수장인 카를 프리드리히부터가 결혼은 왕족후손이 아니라 귀족 딸[* 백작가문인 [[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]]의 친척의 딸이다.]하고 한데다가, 그마저도 이혼하고 2010년 사진작가인 평민이랑 재혼했다. 게다가 수장 후계자인 알렉산더는 2021년 아예 미국인과 결혼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